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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다방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 서울역사편찬원, 개항기~현대까지 서울 속 차 문화의 공간과 이를 즐긴 인물의 역사를 소개 -

(1) 서울문화마당 제20권 ≪근현대 서울의 차 문화≫ 사진, (2) 남대문역 끽다점(《황성신문》 1909년 11월 1일의 개업 광고와 일제강점기 모습) / [서울=GNN]
[GNN서울취재본부=이지현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서울문화마당 제20권 ≪근현대 서울의 차 문화≫를 발간하였다.

이번에 펴낸《근현대 서울의 차 문화》는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서 ‘차 문화’, 더 나아가 ‘음료 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개항 이후의 차 생산, 소비를 통해 알아본다. 우리의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자리잡은 차 문화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였다.

개항 이후, 서울에 다양한 서양문물이 유입되면서 커피, 홍차 등의 음료들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은 새로운 공간과 낯선 음료가 빠르게 자리잡았다. 특히, 경성 사람들은 식료품점, 백화점, 박람회장, 카페, 제과점, 극장 등 새로운 소비공간에서 커피, 홍차는 물론 일본식 녹차, 코코아, 라무네 (레모네이드)등을 마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에는 ‘끽다점[喫 茶店]’, ‘찻집’, ‘티룸’ 등으로 불리던 다방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경복궁 서측(서촌)과 성북동 일대를 중심으로 ‘차’를 매개로 당대의 정치인, 종교인, 문화예술인들이 시대의 아픔을 논하는 ‘교류의 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광복 이후의 1980년대까지 ‘다방의 전성시대’ 속에서 산업화, 석유파동, 민주화 운동, 복고열풍, 세계화 등 시대적 흐름은 서울의 차 문화 풍경에 변화를 가져왔다.

미군정기부터 1970년대까지 널리 확산되던 커피와 홍차는 1973년 부터 시작된 석유파동으로 위축되었다. 이 시기 정부와 시민사회에 ‘국산차 애용 캠페인’이 펼쳐져 커피, 홍차를 대신할 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스턴트 차의 개발과 함께 인삼차, 쌍화차, 곤포차 등의 전통차 소비가 장려되었다.

근현대 서울의 차 문화는 단순히 우리의 ‘전통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의 다양한 차 문화, 음료문화가 융합되어 왔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 차 문화를 복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서울의 차 문화는 마치 ‘세계의 티 테이블’이 모두 모인 듯한 다양성을 보이고 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 책은 작년에 발간된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의 후속으로 먼 옛날부터 이어져 오던 우리의 차 문화가 개항기와 현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다양화되어 왔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문화마당≫을 발간하도록 많은 연구자와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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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현 기자    (afp.gnn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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